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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70주년&정전70주년 기념, '제1회 동두천평화아리랑제' 팡파레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유엔 참전용사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6‧25한국전쟁에서 나누었던 동지애 및 인류애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는 국적이 다른 22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모였지만, 아리랑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역시 참전 용사와 유엔 합창단이 함께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무대 영상에선 각국 참전 용사들이 6‧25전쟁 때 불렀던 아리랑을 추억하며 한 소절씩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이날 '상생의 도시' 동두천시에서도 한미동맹70주년 및 정전협정70주년을 맞이하여 아리랑이 메아리쳤다. 27일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가 주관한 '제1회 동두천평화아리랑제'는 한·미우호관계 발전과 나아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아리랑에 담아냈다. 10시 현충탑과 11시 자유수호박물관에서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단장:김경수), 동두천아리랑보존회(회장:유은서),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이혜솔)이 함께하고, (사)아리랑연합회와 (주)국악신문이 후원했다. 김경수 지부장의 사회를 맡고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의 초혼무 '살풀이춤', 가야금병창 '아리랑',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의 '지신밟기'와 '비나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의 '이담아라리', '동두천아리랑', '황석산아리랑', 왕십리아리랑보존회의 '아리랑'이 불려졌다. 오전 10시 동두천 현충탑앞에서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이사가 동두천평화아리랑제추진단 창립 선언문을 낭독했다. 다음은 선언문 중 한국전쟁 때 남북이 양측에서 각각 불렀던 아리랑이다.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조각이 나는데 38선이 깨어지면 한덩어리 된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잘넘어간다('정선아리랑' 1절) 우리나 님은요 날 그려 울고 전쟁판 요내들 임 그려 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울며 넘네(중부전선 854고지 대적방송(對敵放送) '음탄(音彈)아리랑' 1절) 백두산봉우리 깃발 펄펄 날리고 제주도 한라산 유격대깃발 올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 간다('빨지산아리랑' 1절, ‘항미원조 전쟁 군가집’ ) 11시 자유수호박물관에서는 식전행사에서 한국전쟁시 세계평화를 위해 참전한 유엔군 및 순국선열의 희생을 추모하는 추념제를 올리고, 지신밟기로 시작하여 '아리랑'을 헌정했다. 주최측은 "한미동맹 70주년과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한미우정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통해 더욱 한미우정을 강화하고,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통해 '상생의 도시' 동두천시의 정화와 치유를 회복하는 정주년이 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김경수 회장은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여 아리랑으로 이 땅을 정화시키고 '동두천시를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 회복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동두천'의 서사를 주제로 한 지속적인 전통문화 활동을 통해 동두천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전환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특히 이번 행사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가한 22개국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호국영령들에게 아리랑을 바친다"라고 밝혔다. 또한 내년 2회에는 경기 북부 지역의 민·관·군과 다문화사회를 대상으로 아리랑으로 하나가 되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의 장을 확대·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히겠다고 전했다. 유은서 회장은 "전국적 물난리로 행사가 축소된 이번 동두천평화아리랑제이지만, 우리 전 회원은 한마음을 모아 유엔 참전용사들과 순국선열들을 추념하며, 평화의 노래 '동두천아리랑'이 시민들에게 애창곡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혜솔 회장은 "동두천에 주둔한 미 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부르면서 감회가 새롭다. 미군들이 널리 알린 이 아리랑이 미국 뮤직션들이 편곡하여 여러 버젼의 아리랑이 음반으로 나왔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정전 70주년이라는 정주년을 통해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담보하는 동두천의 서사는 '상생의 도시 동두천'으로 거듭날 수 있다. 상생의 도시 동두천은 세계 유네스코가 주목한 아리랑의 3대정신(대동 해원 상생)을 구현할 수 있는 중추적 역활을 수행할 수 있는 서사를 담보하고 있다.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미군 7사단이 매일 아침마다 불렀던 단가 '아리랑', 1964년 안흥리에 미군 7사단이 지어준 '아리랑다리', 미군 위안부 모임 '아리랑'은 동두천 시의 역사이고 서사이다. 그만큼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요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산리에 1971년까지 2만6천명이 주둔한 미군들이 단가로 아리랑을 불렀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아리랑악보가 담긴 실크 스카프를 고국으로 보냈다. 어제 국가보훈부에서 이 '아리랑스카프'를 복원하여 유엔 참전용사들에게 선물을 한다고 밝혔다. 아리랑은 전장에서뿐 아니라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조인식을 마치고 귀환하던 유엔대표단과 북한 측이 사열할 때도 동시에 각각 연주된 곡이다. 이날 동두천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여 아리랑이 불러진 것은 역사적 의미를 시사한다. 아리랑은 미래의 노래이고 평화를 상징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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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의 '태극상모'를 아십니까조선시대에는 양주의 속현으로 속한 34개 방리 중 하나인 이담이 동두천시의 근원이다. 1953년 점차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1963년 이담면이 읍(邑)으로 승격되면서 '이담'이 동두천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다. 동두천에는 이담농악단이 있다. '이담농악'의 전신은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등이 조선후기에 정착되어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행단제 (1,000년된 은행나무에서 행단제를 벌이면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뒷풀이로 구성된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1995년 '이담농악' 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어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故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故장병우(송내동) 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뒤놀음을 구성하고 광복가락과 법고놀이의 하나로 농사풀이를 재현하고 다른 농악과는 달리 농기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었고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담농악 판제가 완성되었는데 당시에 이루어진 이담농악의 가락은 본래 동두천지역에서 행해지던 가락을 기본바탕으로 재창조가 이루어졌다. 1999년 경기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근래 들어 이담농악 보존회를 활성화 시키면서 하계 동계에 걸쳐 이담농악 수련회를 열고 있으며, 송내농악 법고쟁이로 활동하셨던 故장병우 선생님을 이담농악보존회 고문으로 모시고, 故장병우 선생님께서 이담농악보존회 부회장 김경수에게 고증과 함께 원형을 복원, 재현하여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 시킬수 있도록 전승하는데 힘쓰고 있다. 또한 이담농악은 옛 부터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의 유례를 따와 나라사랑의 염원을 담아 태극상모를 국내에서 쓰는 것이 국내 유일한 특징이다. 이담농악은 2017년 향토문화재인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지정과 더불어 김경수 보유자를 주축으로 한국 전통예술의 계승 발전과 지속적인 무대화 작업을 통해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총 12개의 전국 지부로 운영되고 있으며, 약 12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이담농악의 전승과 개발에 힘쓰고 있다.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주요 연혁 1994년 이담농악놀이 발굴& 재현 전국대회 참가 2016년 7월 국악협회 동두천시지부 찾아가는 우 리문화 찬조출연 2016년 8월 동두천시 제2회 어화둥둥 오작교축제 축하공연 2016년 8월 동두천민요보존회 백중 상머슴놀이 초청 공연 2016년 9월 제1회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공연 2016년 9월 우리전통 한마당 공연 2017년 6월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2017년 10월 이담농악정기연주회 2018년 10월 안성바우덕이축제 초청공연 2018년 10월 원주매지농악 대한민국농악대축제 이담농악초청공연 및 시연 2019년 6월 제4회 동두천이담농악 두드림 대축제&제3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최 2020년 제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개최 2021년 제5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개최 2022년 제6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 동두천 이담농악 두드림대축제 개최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수상이력 2019년 제7회 부안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국회의장상) 2019년 제21회 서산전국농악명인경연대회 명인부 단체부문 대상 (국회의장상) 2019년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대회 농악부 장원 (국무총리상) 2019년 제1회 난계풍물경연대회 단체부문 대상 (충청북도지사상) 2020년 제6회 계양산국악제 전국대회 풍물부문 대상 (인천광역시장상) 2020년 제19회 평택전국웃다리농악경연대회 농악부문 종합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21년 2021대한민국 예술축전 국악부문 대상, 종합부문 최우수상 (동두천국악예술단) * 대회에 문화재 단체는 못나가서 산하단체로 나감 2022년 제30회 임방울국악제 농악일반부 대상 (국회의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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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임방울국악제에서 '동두천이담농악' 농악부분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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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무형문화유산 '이담농악'의 재현과 특성본지 8월 13일자 이담농악단 김경수 단장의 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 이라는 주제의 지면이 나간 후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담농악'은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경기 북부지방의 양주시 문화권에 본류를 둔 농악으로, 이담풍물놀이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경기도 향토 지적 재산으로 선정되었다. '이담'은 1963년까지 양주에 속해 있는 동두천의 옛 고을 이름이다. 양주지역은 예부터 수많은 뜬쇄들이 배출된 농악의 고장이었으며 마을마다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1945년 8·15광복 전후에 양주지역에서 개최한 각종 농악경진대회에서 이담농악은 많은 상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까지는 이담농악에 속하는 송내농악·안흥농악·광암농악·행단농악·하봉암농악 등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송내농악의 상쇠잡이 조임득, 행단농악의 이창인 등이 이담농악을 이끌었다. 근래에는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회가 구성되었다. 1997년 문화원에서 ‘우리소리 한마당’이라는 제명으로 이담농악이 재현되었다. 2년후 1999년 경기도 민속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동두천 지역민의 응원에 2007년에는 '동두천시립이담풍물단'이 창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온지 8년 후, 2017년 이담농악이 문화재 등록이 되고, 보유자가 지정된다. 김경수 단장은 전승이 희박해져 가는 동두천 '이담농악'을 재현하기 위해 힘쓴 공로와 타고난 예능을 인정받아서 동두천 무형문화재 3호 '이담농악' 보유자가 된다. 그런데 필자는 왜 타지에서 온 김경수 단장이 보유자가 되었을까라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정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동두천 '이담농악'이 무형문화유산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본다. 김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니 일찌기 '국악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40여 년 동안 올곧이 '농악'에 몸 담고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1982년 '농악의 육군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한국민속촌농악단의 입단제의를 받아 그곳에서부터 전승활동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 농악의 맥과 계보를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김단장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로 출발하여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 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을 맡으면서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농악보존회를 조사하기 위해 매주 현지 답사를 수행하고 있다. 한달 간 인터뷰를 통해서 일제강점기는 물론 1945년 해방 전후 전국 각 지역 고을마다 마을마다 존재했던 전국 농악보존회 단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담농악의 시원과 역사성 Q. 안녕하세요. 지난 달 본지에 실린 김경수 단장님 기고문을 통해서 '농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집니다. 이 기고문을 읽은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동두천 지역 농악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A. 때는 1994년, 지인을 통해서 동두천 지역 학교에서 풍물반 지도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두천이 예전에는 양주 지역이어서 양주농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수히 수락을 하고 온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왔습니다.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 농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지역 농악의 존재와 전승상황은 어떤지요 A. 당시만해도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논두렁 밭두렁 지나가면 농부님들이 흥얼거리면서 '논매기소리' 같은 민요가 생생히 살아있는 고장이었습니다. 즉, 수량이 풍부한 내천을 끼고 사는 고을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이 많고 당연히 마을마다 농악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왕지사 동두천에 사는지라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Q. 당시 동두천 여상 고적대는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도하시는 풍물반은 어땠나요. A. 당시 동두천여상의 고적대와 풍물반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수이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Q. 이담농악의 존재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어서 조사를 시작하셨나요? A.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풍물반 학생들이 동네 어르신에게서 지역 마을공동체가 주관하는 놀이(풍물)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동두천여상 풍물 담당 김흥래 선생님의 자문과 천재원 동장님의 고증에 따라 동두천 지역 농악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Q. 인생 최고 청년기에 동두천에 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시는 것 같아요. A. 제가 동두천여상 풍물반을 지도하러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이담농악을 만났고... 1999년 경기도 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동두천 이담농악이 국악계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담농악이 오늘의 저의 존재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Q. '이담농악'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듣고 싶습니다. A. 동두천의 옛고을 지명이 이담입니다. 마을조사에서 농악의 존재와 꼭두쇠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구심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1995년 '이담농악동호회'도 창립되자마자, 저는 문서와 흔적을 찾기 시작했죠. 당시 발족회 주축 인물은 송내농악을 이끌었던 상쇠 조임득, 이창인 어르신들이 앞장서서 이끌어주셨습니다. 동두천 지역 농악을 양주에서 최고의 민속놀이로 끌어올린 연희자들이셨습니다. Q.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A. 이담농악은 1980년대에 들어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1985년 향토사학자 조규진에 의해 윤곽이 확인되었고, 1987년부터 재현을 논의한 후에 1995년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전승단체가 구성되었죠. 이때 30살을 갓 넘긴 어린 저에게 시작을 함께 한다는 명분을 주셨습니다. Q. 마을조사와 학계의 고증을 통해 이담농악의 재현작업이 시작되어 가는 과정에서 본인의 역활과 성과가 궁금합니다. A. 재현 과정은 이론과 연희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행단농악에서 활동하던 어윤희(지행동), 송내농악의 장병우(송내동)등의 고증에 따라 행단농악과 송내농악을 재정리하여 앞놀음과 뒷놀음을 구성하고, 전해지는 광복가락과 법고놀이를 체득하고 전래되어 오는 '농사풀이' 소리를 재현하여 이담농악의 몸집을 만들어 만들어 갔습니다. Q. 조사과정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시나요? A. 故 장병우 선생님이십니다. 이담농악의 전신인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이십니다. 2016년 10월 12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소고놀이를 통해서 농사풀이 과정을 고증 받아서 정리를 했습니다. 전 과장의 재현과 무대화를 위해 각별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당시 일정 기간 단절된 이담농악의 재현을 위해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A.동두천 출신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저를 처음엔 그 누구도 탐탁치 않게 바라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을조사와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일이지요. 제가 묵묵히 흔적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며...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간나는 대로 지속적으로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마을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당목 은행나무 밑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기원을 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의 진심이 통했던지...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면서 지난 마을의 역사와 함께 마을굿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긴 세월 동안 힘든 고증과정을 거쳐서 언제 이담농악이 세상(동두천시)에 나왔나요? 즉 언제 어느 무대에서 첫 '재현'(Repretation)을 하셨나요? A. 드디어 10여 년에 걸친 고증작업 끝에 2017년 12월 12일 오후 6시30분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첫번째 정기공연, 즉 무대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이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모두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Q. 그 마을이 바로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마을인가요? A. 네, 사당골(현 이담로 161)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마을굿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굿을 지켜내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마을굿이 있는 곳에는 농악대가 존재합니다. Q. 사당골 마을제는 언제, 어디서부터 출발을 하나요? 특정 장소가 있나요. A. 마을 입구에 마을 수호신 당목이 우뚝 서 있습니다. 특히 이를 알리는 사당골 수호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마을 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마을제를 지냅니다. 행단제라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된 당목 은행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액운을 떨쳐내고 화합과 단합을 기원하는 고유제와 같은 제사의식과 줄다리기 및 씨름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구성된 놀이로 시작됩니다. Q.그렇다면 이담농악의 근간이 된 사당골에서 이루어지는 마을굿 행단제에서는 섬기는 대상이 있나요. 대상이 있다면 무엇을 상징하는 설화나 전해오는 민담이 있지 않을까요? A.사당골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당목과 함께 어유소 장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Q. 흥미롭습니다. 사당골을 지키는 은행나무가 기적이나 예시를 보여준 전설이 있나요. A. 조선 초기 어유소 장군이 어린시절부터 이 은행나무 밑에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은행나무와 대화를 주고받듯 은행나무를 모시면서 가까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한달 동안 은행나무가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또 조선 말기 고종 인산일 바로 직전에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데 갑자기 마른 벼락이 치면서 한양 방면을 향해 자라고 있던 큰 가지가 저절로 꺾여 부러졌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어유소 장군과 은행나무을 기리는 ‘행단제’라는 마을굿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죠. Q. 사당골 마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1150년대에는 온양 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였으며 고려 의종시 상서령 벼슬을 한 방휘진이 1177년에 이 마을에 묻히고 이후에 사당이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1420년에는 평해 황씨, 1430년에는 충주 어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사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사당골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사당은 양지마을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는 사당골을 행단부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부터는 양주군 동두천읍 지행 2리였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동두천시 내행동 5통이고, 현재는 불현동 23통으로 46세대 외에 아파트 단지가 구성되었고, 이후 마을회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Q. 사당골 마을회 구성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고문에는 박양희, 회장에는 황석만,부회장은 이경훈,총무는 이창수,감사는 박현희, 운영위원으로 박은희, 박찬희, 박정호, 송요섭, 이상재, 이명애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면 황석만 회장님이 반겨주십니다. 이담농악보존회 후원회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마을제를 지내도 앞장서서 주축이 되는 마을 유지분들입니다. 그런데 자꾸 젊은 사람들은 아파트로 이사가는 추세입니다. 아! 마을이 살아야 나라도 삽니다. Q. 지금도 사당골에는 마을제를 지내나요. A. 인터뷰 당일날에도 우연치 않게 은행나무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박은희 어르신께서 은행나무 주변에 제초기로 잡초를 제거하고 계신 것을 보고 다행이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구가 줄어서 매년 음력 10월1일에 마을사람들이 당목 아래에서 삼색 과일과 술을 올리며 간소하게 마을제를 지낸다고 박은희 어르신께 인터뷰를 통해서 전해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어 활동이 번창하였으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연세가 고령화되면서 박은희 운영위원님 외 몇몇 어르신들만이 관심을 가지시는 실정이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주변 마을에서 농악이 성행했는 마을은? A. 이담농악의 전신인 행단농악(지행동), 송내농악(송내동), 안흥농악(동안동) 등이 조선후기부터 연행되었으며, 주변 지역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습니다. 특히 행단농악의 지행동, 송내농악의 송내동, 안흥농악의 동안동, 이 3개의 지역에서도 마을굿과 농악대 활동이 가장 성행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도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죠. 그러나 산업화가 급속히 발전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농사보다는 보산동 상가와 주변 골목들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문화가 조성되어 전국에서 외지 사람들이 불나비처럼 모여들었죠. 최근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동두천역 근처 상권이 발달하면서 점점 전통 민속문화같은 농악이 자취를 감추고 명맥 마저 희미해져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Q. 마을조사를 하시면서 이담농악 재현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A. 송내동에 사시는 장병우라는 분이십니다. 소고잽이이십니다. Q. 송내농악의 소고잽이셨던 故 장병우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A. 사당골 마을회 운영위원이신 박은희 어르신에 의하면, 송내동에 장병우라는 소고잽이가 있었고, 송내농악이 행단제를 지내고 나면 넓는 공터에서 난장을 틀고 농악놀이 등 다양한 풍장놀이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고 합니다. 그 중에 장병우 소고잽이가 송내농악의 유일한 생존자로 살아계셨는데 안타깝게 금년 6월 18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12월 12일(토) 2시에 동두천시민회관 공연장에서 동두천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주관으로 무형문화재 연합회 공연에서 이담농악단원들과 장병우 선생님께 ’소고놀이‘ 농사풀이를 지도받고 선생님과 저와 단원들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Q. 저도 작년에 이광수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12일 참석했습니다. 장병우 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서 풍물을 치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 분의 유품 중 상모같은 거라도 보존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혹 남겨주신 거라도 있나요. A. 네, 다행히 상모와 의상을 저에게 주시고 가셨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겨있습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곤합니다. 가신지 얼마 안되어선지 실감이 안납니다. 생각만 하면 그리워집니다. Q. 이담농악보존회는 언제 창단이 되었나요? A.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1995년에 ’이담농악‘이라는 동호회 형식의 단체가 구성되어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습니다. 이담농악의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서 성신여대 지회와 을지로 지회 및 구미 지회, 동두천 관내에도 상패동, 송내동,걸산마을, 동두천시 평생학습관. 동두천문화원에서 이담농악 강좌, 등..... 활성화를 위해서 회원님들을 모시고 있으며 이담농악후원회 이사회를 조직하였습니다. 동두천 시민들에게 이담농악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이담농악 각 과장의 구성은? A. 이담농악을 이끌어 가면서 재구성한 것은 광복가락을 입장과 퇴장할 때 치고있습니다. 고깔소고 농사풀이 과정을 故 장병우 선생님과 작년에 함께 공연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1)길놀이(광복가락) ⟶ 2)인사굿 ⟶ 3)원진 ⟶ 4) 벅구마당놀이 ⟶ 5)당산벌림 ⟶ 6) 멍석말이 ⟶ 7) 원진 ⟶ 8) 벅구놀이 ⟶ 9) 한줄벅구 ⟶ 10) 두줄벅구 ⟶ 11) 벅구 농사풀이(가래질,논가는 동작, 모판대기, 씨앗 뿌리기, 써래질, 모 짜고 심는동작, 애눈파기, 두벌논메기, 퇴비주기, 벼베기, 타작)로 전과장이 11과장입니다. 설명을 하자면 동작과 춤사위도 보여 주어야 하니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Q. 당시 문화재 지정 신청하는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A. 2016년에 시 문화재 신청서를 넣을 당시에는 절차와 방식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막했습니다. 장구잽이로 학교에 출강하면서 현장에서 활동하던 실연자이라서 행정적인 문서화 작업이 저에게는 엄청 부담이 많았고 벅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지인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서 신청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정도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담농악'의 광복장단과 태극상모.그리고 제금 편성 Q. 이담농악만이 갖고 있는 지역성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나요? A. 하나는 '광복장단'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태극상모'입니다. ‘광복장단’은 이담농악에서만 쓰이는 가장 특색 있는 장단으로써 1945년 광복 전후 동두천 지역에서 길놀이를 할 때에 쓰이던 장단입니다. 말 그대로 ‘광복’ 이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해방을 표현하는 장단이라고 봅니다. 외세에 의한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흥을 더하고 신명을 표출할 때 쓰이던 장단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지금까지 큰 경사스러운 날에는 반드시 ‘광복장단’을 썼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담농악 판제에 가장 특색 있는 장단이 되었습니다. 더한다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불교적 성향이 보입니다. 불교식 제례에서 스님들의 춤사위인 바라춤에서 쓰는 '바라'(제금)를 사용하여 편성이 이루어집니다. Q.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이 타 지역과 대비해서 이담만의 것인가요. 그렇다면 동두천 지역 농악대에서만 전해진다는 '광복가락'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동두천 송내동, 지행동, 동안동, 등 여러 지역에서 치던 가락입니다. 일제강점기 1940년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가로 불린 광복군아리랑이 떠 오릅니다. 농민들이 광복을 기원하면서 '광복+농악'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광복후에 광복군아리랑을 만들리가 없거든요. 이 용어의 발생을 1940년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재금을 치배로 구성하여 함께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담농악의 판제가 완성됩니다. Q. 다른 지역 가락의 용어는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A. 삼채장단, 덩덕쿵이, 자진모리장단 등등 다양합니다. Q. 광복가락을 듣고 싶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다른 지역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광복가락’의 기본 장단은 쇠가락 구음으로 ‘갱 무개갱 갱 무개갱 갱 갱 갱 무개갱’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장단은 '덩덕궁' 장단이라 볼 수 있죠. 광복장단은 긴 삼채굿 혹은 자진삼채굿과 비슷하나, 다른 점은 긴 삼채굿, 자진삼채굿의 경우에는 기본형과 반주형을 교대로 치지만 덩덕궁이의 경우에는 기본형에 구애됨이 없이 다채롭게 변주하여 리듬이 매우 생동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이 ‘광복장단’ 역시 길놀이 때의 걸음걸이에 따라 장단의 속도와 장단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 이담농악대가 쓰는 태극상모도 독특합니다. 연유가 있나요. A. 이담은 다른 농악대와는 달리 농기(만장기, 깃발)위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상모에도 태극문양을 그려넣습니다. 예전에 동두천에는 태극기와 태극문양이 아주 흔했습니다. ’동두천‘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남과 북이 갈리는 최전방 길로 통하는 교통의 도시 동두천, 전통과 달러가 공생하는 동두천(당시 세간에서 지나가는 개도 파란 달러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했죠.)....거리에는 주한 미군 제7사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군들이 많았죠. 미군들을 상대하는 크럽이나 레스토랑 건물 입구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흔하게 보입니다. 미군들이 주로 외출복으로 걸치는 카키색 항공점퍼나 모자에는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수 놓아서 입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죠. 점퍼 뒤에는 한반도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수놓아서 입을 정도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도 그런 미군들이 입던 군복을 구입해서 멋스럽게 걸치는 미리터리룩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도 농기에 태극기를 그려 넣게 되고, 태극상모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동두천 이담농악만이 태극 문양이 그려진 태극상모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담농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동두천, 광복장단, 태극상모를 연결해보니 동두천 백년사 중 민중사 일부가 고스란히 '이담농악'으로 직결된다. 일제강점기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발생한 광복장단(1940년초), 1950년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 7사단이 주둔한 동두천은 외부 집단으로부터 정체성을 찾고자 해서 나온 태극문양(1960년 이후)은 지역성을 구현시키고자 나온 태극상모(2017년)로 연결된다. 김단장은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태극상모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전통문화의 시대성이 발현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제금을 쓰는 모습에서 불교적 성향이 엿보인다. 이 이담농악의 3가지 특성을 통해서 동두천 역사의 일부분을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Q.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 자랑을 하신다면? A.동두천 이담농악의 자랑은 모두가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최고의 자랑이라고 자부합니다. 전공자나 동호인분들이 구분없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동하고 단결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 유지이신 차유철 보존회장님을 중심으로 이담농악 후원 이사회가 구성되어서, 정신적으로 든든합니다. 동두천 관내에서 저명한 훌륭한 분들로서, 우리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메타버스 시대에 앞서가는 '농악의 컨텐츠' 개발 연구 절실하다" Q.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장으로서 동두천 시민들에게 ’국악‘과 '이담농악'을 어떻게 알리고 싶으십니까? A. 첫째, 가까운 의정부에는 회룡문화제가 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 등..... 동두천예술제를 더 키워서, 전통을 복원하고 'K-국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이 실린 ’이담문화제‘가 개최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어우러져서 시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국악‘을 알려야 합니다. 특히 동두천은 일찌기 숭늉보다도 커피를 더 좋아하고 서양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낯선 국악을 감상하기 위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죠. 둘째, 세계적 한류 바람을 타고 한류의 근간을 전통 민속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K-국악‘이나 ’K-뮤직’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요청하는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셋째, 동두천시가 주최하고 국악협회가 주관하는 ‘동두천 국악대제전 전국국악경연대회’를 타악 부문, 민요 부문, 연희 부문 이렇게 3개 부문 학생부와 일반부, 명인부로 나누어서 개최를 하여 경기북부를 시작으로 경기도를 대표하는 국악대제전을 통해 동두천을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 공연은 언제부터 나가셨나요? 다녀 오신 나라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A. 1987년 남사당 사물놀이 예맥 활동을 시작으로 김덕수 명인 밑에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 호주 등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동포사회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인도. 말레이 시아. 폴란드. 파라과이. 베네쥬엘라.멕시코. 보스니아. 칠레. 홍콩. 이라크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민족음악을 알리는 기회가 주어졌죠.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다양한 컨텐츠가 열립니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수 있습니다. 많은 영감을 얻고 왔습니다. 특히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동포사회 청소년들이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특히 동포들과 휘날레를 할때는 모두 손을 잡고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우리 공연에 대해서 아리랑으로 답해주는...그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동포들에게 농악을 전수해주고 싶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 '농악' 을 주제로 한 전국 단위 행사는? A. 2018년 10월 전국 50여 개 지역 농악보존회가 총집합해서 난장을 틀고 광화문에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조직위원장:윤영달) 판놀이길놀이(거리퍼레이드)를 할 때입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농악대들이 하늘 높이 만장기를 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난장을 틀때는 신명이 올라서 하늘로 용솓음쳤습니다. 전국 농악대를 이끄는 리더를 맡은 임웅수(경기무형문화재총연합회 이사장)회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에 형제들(?)과 주고 받은 에너지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립니다. 그 행사를 열어주신 해태크라운제과 윤영달 회장님의 국악에 대한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 고인이 되신 주재연 예술감독님의 열정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대 길놀이야말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컨텐츠라고 봅니다. 동두천예술제에도 시도하고 싶습니다. 길놀이는 길닦이를 통해 정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제1회서울아리랑페스티발부터 학술자문위원 소속 단체라서 매년 3일간 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농악대가 보여준 거리퍼레이드는 장관이었다. Q. 20여년 동안 동두천에서 이담농악단을 맡으시면서 제자 중 특별한 제자가 있는지요. A. 파란눈의 이담농악 전수자,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Basile Peuvion)입니다. 우리가 2015년 9월 프랑스 낭트페스티발에 초청 공연을 받고서,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사물놀이 교습을 열었는데, 그때 농악을 공부하러 온 재즈 드러머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는데 2018년 여름 휴가를 받고 한국에 와서 수소문 끝에 저를 찾아서 동두천까지 와서 우리집에서 숙식을 하면서 한달 동안 농악을 배우고 돌아갔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담농악단 하계, 동계 수련회 및 김경수 장구 두드림캠프에서 농악을 전수한 이래로, 해마다 2회에 걸쳐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하계수련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농악과 재즈가 협연하는 실험적 무대도 만들었죠.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문화와 서양 문화가 섞이니까 상대는 물론 우리 농악도 빛을 발하더군요. Q. 외국에서 동두천까지 농악을 배우러 온 프랑스인 바질 쁘비용 소개해주세요. A. 재즈음악가인 그는 12세때 재즈드러머로 입문. 2012년 여수 국제 엑스포에서 공연한 경험을 계기로 한국 음악을 발견하게 됩니다. 판소리와 민요, 그리고 사물놀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에 장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주 한국문화원에서 추최한 ‘K-Vox voix coréenne 2015’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만큼 신명과 끼가 있는 친구입니다. 프랑스주문화원에서 이담농악을 배운후, 칠곡 세계사물놀이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국악 타악곡 웃다리를 드럼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비나리, 진도아리랑, 사랑가를 연곡으로 부르고, 장구 솔로 연주를 선보였죠. 외국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과 재즈음악을 배합한 수많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 국악대전에서 외국인 부문 최우수 수상하는가 하면, 자라섬 재즈패스티벌 참여하여 농악을 가미한 재즈 드럼 공연 등을 펼치는 등 활발한 국악 전도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음악에 빠져서 이광수 명인을 찾아가서 '비나리'도 배워서 무대에서도 불렀습니다. 휘날레에서는 늘 아리랑도 잘부릅니다. 현재 프랑스, 벨기에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 이담농악 및 한국 음악을 알리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두천 명예시민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제자입니다. 벌써 보고 싶어지네요. Q. 단장님이 연구하시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A. 저는 지금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 6학기 논문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은주 교수님의 논문지도하에 "대한민국 농악 용어 연구”란 제목으로 열심히 인터뷰를 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용어 속에서 예인들의 생각과 시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전국에 있는 농악인들을 찾아가서, 국가문화재, 광역시문화재, 도문화재로 분류하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농악에 대한 데이터가 국가기록 빅데이터 자료가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특히 아직 저에게는 벅찬 서양예술사, 예술기획과 행정. 한국예술사, ’예술과 사회‘같은 학문이 농악을 다각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3년이나 된 코로나라는 비대면 시기에 주어진 시간을 다행히 공부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Q.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 예능보유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이 민족유산 '농악'을 물려주기 위해 지향해야 할 과제는? A.농악은 마을굿에서 출발한만큼 지역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민족유산입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2009년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중국식 표현)이 향유하고 있는 농악을 ’농악무‘라는 종목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습니다. 우리는 2014년에,,,안타까운 일이죠. 첫째, 180개국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농악의 세계화‘를 펼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적 무대가 필요합니다. 일찌기 김덕수 선생님을 따라서 국외 공연을 많이 다녀왔습니다. 국내 무대와 국외 무대는 다릅니다. 청중의 시선에 맞추어야 합니다. 당시는 공연에만 집중하는지라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공연 무대에서 연희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예술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국외에서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농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확장될 수 있도록 문화와 문화를 연결을 시켜주는 문화매개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사물놀이'(김덕수 명인)와 '판소리'(안숙선 명인)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고 주재연이라는 문화기획자에 의해 'K-국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둘째,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작업입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풍류대장, K-팦 등과 같은 대중문화가 넘쳐나면서 국악을 전공했던 세대들의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방탄소년단과 같은 아이돌 그룹의 경제적인 가치와 시너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악도 이런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무대가 생긴다면 무한한 컨텐츠가 생겨나리라고 봅니다. 셋째,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농악이 '지속가능성' 있는 종목으로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계승발전이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 전승환경 개선과 행정적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농악은 메타버스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도 전해져야만 하는 지속가능성 있는 민족유산입니다. 다음세대에도 계승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농악의 컨텐츠' 개발이라고 봅니다. 저의 연구는 이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악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구술작업을 통해 이담농악의 특성을 찾게 되었다. 광복장단과 태극상모, 그리고 '제금' 편성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을조사를 통해서 광복장단에 대한 민속학 및 음악적 학술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아리랑연구자로서 광복가락을 듣고서 '광복군아리랑'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0년을 전후해서 '광복'이라고 명명했던 가락을 오늘날까지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을에서만 치던 장단이 아니고 양주농악을 계승해 온 이담농악 권역에서 많은 마을이 전승해 오고 있다. 시대성을 도입한 민중예술의 전승주체들이야말로 '창조적 계승'의 실체인 것이다. 태극상모의 출현과 이를 계승하는 이담농악은 자발적으로 지역성을 구현하려는 주체들의 성과라고 본다. 대내적으로는 미군 제7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과 태극기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무형문화유산 종목 중 지역명(지역+종목+보존회)을 달고 있는 전국단위 민속예술 종목 중 하나가 '농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참가할 수 있는 '대동놀이' 종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아리랑페스티발 광화문 무대에서 전국 단위로 집합할 수 있었던 종목이 농악(2018년)과 아리랑(2019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종목 중에서 아리랑, 농악이 2012년 2014년에 각각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때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부분이 바로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종목'이라는 것이다. 즉 대동성에 주목한 것이다. 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3호 전승단체로써 위상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회 회원들과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목표로 원형을 복원하고 재현하여 이담농악을 후손들에게 계승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보호조례를 보면, "제53조의5(도무형문화재의 보호 및 육성)의 제1항에 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지정된 도 무형문화재의 전승·보전을 위해 전수교육비·장학금 등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승자들은 경제적 문제와 열악한 전승 환경에 내몰린 채 힘겹게 우리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일수록 명맥 잇기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무형문화 전승자들의 실상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전통연희축제 첫날은 김덕수 명인이 ‘신동 김덕수의 초연’ 둘째 날에는 연희풍류’, 고창농악보존회의 ‘고창농악 판굿’, 삼도농악’이 이어진다. 셋째 날에는 줄타기 공연인 ‘동두천 이담농악X여류줄꾼 서주향’ 공연이 준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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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동두천 이담농악, 경기북부에서 '국악의 메카'로 도약인류무형문화유산 '농악'(農樂) 우리 나라의 고전음악이나 고전무용이 과거 봉건 시대에는 왕공가(王公家)에서부터 일부 특권 계급의 예속물로 인식이 된 일도 있으나 '농악무'만은 고대로부터 농민 대중이 주체가 되어 발전시켜 2천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속문화이며 대중예술의 꽃이다. 전국 농촌에서 많이 행하여지는 권농(勸農) 음악 무용으로 독보적 장르이다. 농악무(農樂舞)는 공동체의 연장자들이 젊은 세대에 전승하는 대중적인 풍습이다. 풍장, 풍물놀이라고도 한다. 특히 즉흥적이며 씩씩하고 활기 넘치는 신명성이 뛰어난 종목이다. 지역마다 다양한 농악놀이가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 19세기 중국 동북삼성에 이주한 조선족들이 향유하는 '농악무'가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어있다. 우리가 지역마다 너무 많다는 이유로 등한시 하는 사이에 중국이 동북공정 일환으로 '중국 조선족 농악무(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라는 명칭으로 중국의 전통으로 둔갑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큰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나가야만 한다."라는 것이다. 이후 2014년 11월 27일 대한민국 '농악'이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제9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열린 24개국 심사위원이 만장일치로 등재를 결정했다. "활력적이고 창의적인 농악은 일년내내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많은 행사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공연자와 참여자들에게 정체성을 제공하는 유산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관객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개방성과 공동체 결속 기여도에 주목한 것이다. 아직도 나는 이날의 기쁨은 생생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동두천 국악협회와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어제 오늘 2일간 동두천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동두천 '이담농악두드림대축제'와 함께 제6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었다. 전세계를 멈추게 했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빚어졌던 일상생활의 정체기가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최근 줄확산으로 멈칫하지만, 2년간 멈췄던 지역 축제와 크고 작은 공연들이 재개될 것처럼 보인다. 움츠렀던 공연예술계가 미루었던 작품들을 다시 무대로 소환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관객들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비대면 공연과 관객 감소로 주춤했던 축제와 대회들이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국악협회 동두천 지부와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에서 주관하는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도 3년 만에 대면으로 개최되었으며, 내년도에는 '동두천 김옥심 국악대제전(전국국악경연대회)'를 유치하여 국악 3개 부문(농악부문, 민요부문, 무용부문) 개최하고자 추진하고 있다. 동두천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있는 도시로, 처음 방문했때 첫 인상은 문화적으로 미개척지라는 도시였다. 하지만 이처럼 척박한 곳에서도 경기민요, 서도소리, 가야금 병창을 전승해오던 문화인들이 존재했다. 이들과 함께 동두천 국악협회를 경기 북부, 나아가 한국 최고의 지부로 만들기 위한 변화의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동두천 국악협회와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는 동두천시와 동두천시 문화유산의 계승·발전 및 홍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을 위한 학술세미나 개최 및 경기도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 전 회원들이 하나가 되어 집중하고 있다. 서울 및 경기 남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의 기반이 적었던 경기 북부 지방을 부흥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문화예술이 다시 관심과 주목을 받는 상황 속에서, 위기를 기회 삼아 경기 북부의 국악을 대표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두천 이담농악 보존회' 주요 수상 이력 2019년 제7회 부안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2019년 제21회 (서산)전국농악명인경연대회 명인부 단체부문 '대상' 2019년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대회 농악부 '장원'(국무총리상) 2019년 제1회 난계풍물경연대회 단체부문 '대상' 2020년 제6회 계샹산국악제 전국대회 풍물부문 '대상' 2020년 제19회 전국웃다리농악경연대회 농악부분 '종합대상' 2021년 2021대한민국 예술축전 국악부문 대상, 종합부문 '최우수상' 국악인 김경수가 걸어 온 길 나는 1965년 충청남도 인삼의 고장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밴드부 활동을 하는 등....음악부 교사에게서 예술적 기질이 엿보인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어느새 주변에서 국악영재라고 불렸졌다. 어느 날 어머니 어깨 너머로 보기만 했던 장구장단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자연스레 농악을 전공하게 되었다. 금산농업고등학교 농악부에서 '좌도농악'을 김봉열 선생님께 사사받고, 졸업후 한국민속촌 국악연주단에 입단하여 정인삼 선생님께 '전라우도 농악'을 사사받았다. 뼈를 깍는 노력으로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 금산인삼제 농악경연대회 개인 최우수상 수상하였다. 이후 송순갑 선생님께 '웃다리 농악'을 사사받으며 전국 각지의 다양한 농악을 체험하게 된다. 전역 이후, 예맥 남사당 사물놀이와 워커힐 예능부, 김덕수 사물놀이패 활동을 거치며 사물놀이 ‘진쇠’와 (사)한울림예술단 창단 멤버로 활동하면서 전세계 무대에서 활발한 공연을 펼쳤다. 동두천 여상 풍물반, 국립전통예술 중-고등학교 출강, 선화예술중학교 출강, 예원예술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무용과를 졸업하였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외래교수, 성신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겸임교수 등 교육계를 통해 후대를 이어나갈 제자들에게 농악을 전수하고 있다. 동두천 혁신교육지구 이담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 예능보유자이자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 꼭두쇠(단장)로서 동두천과 동두천시 국악 교육에 앞상 서고 있다. '국악실기 사물놀이 지도자 교본'을 출판하며, 학계에서 사물놀이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쉽게 기술해 사물놀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 밖에도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 (사)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지부장, (사)대한명인회 선정 사물놀이 '채상설장구' 명인,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사)한국국악협회 경기도지회 이사, (사)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동두천지회 부지회장 등 동두천 국악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성산효대학원대학교 효예술융합학과 박사과정에서 국악교육에 대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굿 '행단제'에서 동두천 '이담농악' 발굴 동두천과 인연이 시작 된 것은 1990년 초반 김덕수 사물놀이에서 수학하고 있는 동안 송귀철 선생님을 통해 동두천 여상 김흥래 선생님을 알게 되면서다. 당시 ‘사물놀이 진쇠’ 팀원들과 함께 동두천 여상의 풍물반을 지도하게 되면서 동두천 땅에 첫발을 들였다. 1994~1995년 2년 동안 동두천 여상 풍물반 지도를 하면서, 동두천 지역은 북한계를 따라서 흐르는 내천과 농사짓는 땅이 풍부한 지역이라서 집약적 농사를 짓는 마을을 중심으로 '농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되었다. 사당골(현 이담로 161)에서는 마을 사람이 주축이 되어 오는 마을굿이 내려오고 있었다. 어유소 장군이 1000년이나 살았다는 은행나무 아래 단을 쌓고 학문과 무예를 연마한 데서 유래된 ‘행단제’라는 마을축제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주변 지역에서는 송내농악과 안흥농악 등 농악들이 다수 존재했다. 출신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인이 동두천 지역 농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처음엔 백안시 하던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었다. 마을 어른들과 함께 마을굿을 알리고 재현하고자 시작한 초심이 현재의 이담농악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동두천 옛 지명인 '이담'을 따서 만들어진 이담농악은 동두천 지역에서 행해지던 가락, 즉 행단농악, 송내농악, 안흥농악 등이 정착된 웃다리 가락을 기본 바탕을 근간으로 하여 재구성 된 농악이다. 각 과장은 행단제와 같은 제의 의식과 마을과 마을이 대항하는 줄다리기, 씨름대회 등에서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고 단합을 이끄는 소재로 이어온 동두천 지역 고유한 '마을굿'에서 즐기던 풍물놀이로 구성되었다. 동두천 시립 이담농악단과 이담농악보존회 현재 총 12개의 전국 지부로 운영되고 있으며, 약 12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이담농악의 전승과 개발에 힘쓰고 있다. 1990년 초반 이담농악을 연구하며 이담농악보존회를 창단하였다. 당시 동두천은 문화 불모지 지역에 가까웠는데, 시민들은 문화공연에 대한 관심도가 적었고 관내 행사에 무료 공연으로 불려가도 교통비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이후 보존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동두천시와 함께 노력하여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을 창설하게 되었지만, 당시 시립이담농악단의 첫 월급은 13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맨땅에서부터 시작한 이담농악이지만 전 회원들과 열정을 들여 정성을 다했다. "예술이냐 가족이냐"를 택해야 하는 길에서 흔들리는 나를 오늘까지 함께 한 사랑하는 가족과 전 미담농악 회원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양키문화 1번지 동두천에서 국악에 대한 인식과 공연에 대한 관심은 희박했다. 그러나 우리는 공연비를 못 받을지언정 무대에서 시민들에게 한민족 전통문화 '농악'을 알린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무대에서 뜨거운 의지를 불태웠다. 이러한 진정성이 조금씩 동두천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후원회 이사회가 결성되었으며, 경기 북부에서부터 서울, 나아가 전국까지 '동두천 이담농악'을 알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보존회 전 회원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이담농악단의 단장으로서 해결해야 할 선결문제이다. 이를 위해 "농악단 전원의 한국음악학 석-박사” 과정 이수를 실천하고 있다. 즉 실기와 이론을 겸비하는 국악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담농악보존회 농악단은 이담농악 전승과 보존에 집중하고, 동두천시립 이담농악단에서는 시대에 맞는 창작활동을 통해 외부에 동두천의 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첫째로 전승주체 집단(연희자)이 피나는 노력과 공력을 들여야 한다. 둘째로 민과 관이 하나가 되어 동두천 시민을 비롯한 동두천 시장님, 시의회 의장님의 관심이 절대적이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종일 땀에 젖은 북과 채를 뉘어 놓으며, 동두천이 경기 북부에서 새로운 국악의 메카로 떠오르기를 고대하고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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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농악' 보유자 '김경수의 장구캠프' 개최동두천시가 주최하고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가 주관하는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 보유자 김경수 회장이 '2022년 김경수 장구캠프'를 개최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난 2년동안 개최하지 못한 '김경수 장구캠프'가 8월에 문을 연다.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 이담농악 하계 워크샵이 8월 4일(목)부터 4박 5일 동안 강원도 원주시 매지회촌길 116-14에서 개최한다. 문의 :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김해민 : 010-5898-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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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자의 뛸판, 관객을 위한 놀판,’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최·주관하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가 7월 6일(수)부터 7월 10일(일)까지 국립국악원 일원에서 개최된다.전통연희의 생활화와 대중화를 도모하는 전통연희축제는 매년 2만여 명이 찾는 대규모 야외축제로 2007년부터 개최됐다. 엔데믹 전환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를 즐길 수 있도록 올해는 7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대면 축제를, 9월 9일부터 9월 12일까지는 온라인 축제를 열어 예술인들의 열정 가득한 무대를 즐길 수 있다.개막작은 김덕수 명인이 그동안 쌓아온 60년의 경지를 다시금 초연하는 마음으로 선보이는 ‘신동 김덕수의 초연’으로 축제의 막을 올린다. 둘째 날에는 무속음악 남성 악사 변진섭, 박범태, 김태영, 김운석 4인의 무대인 ‘굿판의 마에스트로 화랭이전’으로 전국의 무속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사물놀이와 재즈의 결합을 선보일 뜬쇠예술단과 타악 연주가 박재천의 무대, EDM 사운드와 전통 음악으로 도시 국악을 형상화한 ‘김주홍과 노름마치’ 공연을 통해 전통연희의 현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화제의 프로그램 JTBC 풍류대장에서 파이널 진출 6팀에 오르며 대중들의 이목을 끈 ‘풍물밴드 이상’, 자메이카 장단 ‘스카’와 우리나라 ‘휘모리 장단’의 흥겨움을 느끼게 해줄 ‘유희스카’의 공연을 통해 MZ세대도 힙한 국악을 즐길 수 있다.이 밖에도 고창농악보존회, 화성두레농악보존회,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등 지역별 농악 시연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여성 줄꾼 서주향의 줄타기까지 더해져 전통 농악부터 무속음악, 줄타기, 탈춤까지 전통연희의 모든 것을 축제에서 즐길 수 있다.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김삼진 이사장은 "일상회복의 시기에 예술가들과 대중 모두 활력을 얻는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뿌리 깊은 전통을 지키며 다채롭게 성장하는 전통연희를 즐기는 시간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전통연희축제 현장 공연은 전석 무료로, 축제 관련 상세정보 확인과 사전 예매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누리집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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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07월 25일)대 회 명 제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회년도 2020 지역 경기도 동두천시 대회목적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 개발 및 전통예술의 계승발전과 국악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자 함 일 시 2020년 07월 25일 ~ 20일 09:00 ~ 장 소 동두천시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보존회 전수관 주 최 동두천시 주 관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후 원 동두천, 동두천시의회, 동두천문화원, (사)한국예술인총연합회 동두천지회, (사)한국국악협회경기도지회동두천지부, 오동국악사, 하늘소리국악기, 고씨공방, 고당국악사, 김대회명춤채공방 *코로나 19 상황을 고려하여 본 대회를 비대면으로 진행함을 재 공지합니다.(이전 공지와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참가자격 부분별나이에 해당하는 남, 여로써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 *비전문인(동호인) / 전문인으로 나뉨 동호인부문(성인 비전문단체)에 관련 전공대학교, 전문단체 소속 구성은 지원불가 * 신분적발시 점수 무효처리 참가신청 2020년 7월 13일 ~ 23일 17:00 도착분까지(접수 후 확인필수) 참가신청서 1부, 우편 및 방문, 전화, 팩스 접수 불가함. 이메일 korraeans@naver.com(메일제목 통일 – 제 4회 동두천전국농악경연대회 참가신청서 _ 경연부문_구분_신청자명(단체명)으로 기재 후 참가신청서와 영상 첨부 후 접수신청. 문의 : 010-5898-1275 / 010-6666-1380 제출영상 촬영방법 mp4 형식으로 촬영, 해상도 (1920×1080) 이상으로 촬영 복색착용하고 촬영. 카메라는 정면에 고정 후 여백이 많지 않도록 촬영 개인일 경우 반주자는 촬영하지 않아도 무관. 단체 참가자는 전원이 나오도록 촬영. 영상 시작시 경연부문(단체 또는 개인부) + 촬영일시 A4 용지에 작성 후 필히 명시할 것.(단 이름, 팀명 제시불가) 이를 어길시 실격처리 참 가 금 없음. 유의사항 ∎인터넷 지원신청서 접수 유의사항 숙지 않음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참가자에게 본인의 책임으로 간주함. ∎지원신청 접수기간 및 시간이 만료된 경우는 지원신청서 수정 및 접수취소 불가. ∎미기재 또는 기재착오로 인한 책임은 참가자본인에게 있음과 기재 사항과 제출서류가 사실과 다를시 수상취소 될 수 있음. ∎경연당일 본인확인할 신분증 지참(여권, 학생증, 신분증 등) ∎입실 및 경연시간 준수 ∎경연에 필요한 의상, 음악, 반주자는 참가자 본인이 준비(MR사용불가) ∎경연은 공개진행함. 경연진행 ∎심사위원은 7명으로 구성 ∎경연은 단심 1회 경연 진행 부문별 접수 순서대로 경연대회 진행 ∎초.중등부-고등부-동호인(비전문단체)-일반부(전문단체) 순으로 진행됨 경연부문 부문 구분 종목 시간 초, 중등부 개인 앉은반 연주 4분 이내 선반 연주 5분 이내 고등부 앉은반 연주 4분 이내 선반 연주 5분 이내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단체 앉은반 연주 10분 이내 선반 연주 10분 이내 일반부 (성인 전문단체) 앉은반 연주 10분 이내 선반 연주 10분 이내 심사제도 종목 배점(100점)만점 초, 중등부 개인 앉은반 연주 기능 30 연주태도 5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고등부 앉은반 연주 선반 연주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단체 앉은반 연주 기능 20, 단결도 50 감정 20, 무대매너 10 선반 연주 일반부 (성인 전문단체) 앉은반 연주 기능 30, 단결도 30 감정 2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총점은 100점 으로 하되 부문별 점수는 최저 85, 최고 99로 함 ∎경연시간은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심사위원의 합의로 조정가능 ∎경연도중 악기의 이상, 실수 등의 경연진행시 실격 처리함. ∎심사위원 7명의 점수를 합산 후 고득점 순의 순위결정하며 동점 시연장자 순으로 정함(단체일시 참가자 인원수, 전체나이 평균의 연장자순으로 정함) ∎위 기준을 적용할 수 없을시 해당부문의 심사위원원 합의 결정 ∎심사위원별 점수를 합한 결과 최고점수로 결정. ∎심사위원은 구성된 심사항목별 배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하 고 경연자별 심사평을 채점표에 기록 후 부문별 채점완료. ∎경연 후 점수의 재조정은 명확한 실수 외에는 불가능 ∎‘직접스승 및 8촌이내 심사위원회피’ 로 심사를 회피한 심사위원 의점수는 나머지 심사위원의 평균점수를 배점함. ∎본 대회는 최총 심사점수 및 결과를 대회종료 후 신속히 게시판 에 게시한다. 심사회피 제 도 참가자는 직접스승이나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에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회피를 경연 전에 신청해야 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아 수상을 한 후, 회피신청사유가 있었음이 발견 될 시에는, 본 주최.주관처는 수상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상장, 상패, 상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참가자는 이 조항을 수락하고 참가하는 것에 동의한다. 시상내역 학 / 생 / 부 – 개 인 부문 상격 상훈 시상내역(원) 인원 학 생 부 개 인 종합대상 동두천시장상 상장 및 상금(300,000원) 1 학 생 부 사물부문 (초등부)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200,000원) 1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품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1 학 생 부 사물부문 (중, 고등부)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200,000원) 1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품 1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1 일 / 반 / 부 - 단체 부문 상격 상훈 시상내역(원) 인원 일 반 부 종합대상 동두천시장상 상장 및 상금 (1,000,000) 1(팀) 일 반 부(성 인 전문단체)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 (700,000) 1(팀)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금 (500,000) 1(팀)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금 (300,000) 1(팀)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 (700,000) 1(팀)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금 (500,000) 1(팀)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금 (300,000) 1(팀)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 첨부 - 제 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운영 및 심사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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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동두천 전국국악경연대회 7월 25일대 회 명 제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대회년도 2020 지역 경기도 동두천시 대회목적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 개발 및 전통예술의 계승발전과 국악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자 함 일 시 2020년 07월 25일 ~ 20일 09:00 ~ 장 소 동두천시무형문화재 제3호 이담농악보존회 전수관 주 최 동두천시 주 관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 후 원 동두천, 동두천시의회, 동두천문화원, (사)한국예술인총연합회 동두천지회, (사)한국국악협회경기도지회동두천지부, 오동국악사, 하늘소리국악기, 고씨공방, 고당국악사, 김대회명춤채공방 *코로나 19 상황을 고려하여 본 대회를 비대면으로 진행함을 재 공지합니다.(이전 공지와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참가자격 부분별나이에 해당하는 남, 여로써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 *비전문인(동호인) / 전문인으로 나뉨 동호인부문(성인 비전문단체)에 관련 전공대학교, 전문단체 소속 구성은 지원불가 * 신분적발시 점수 무효처리 참가신청 2020년 7월 13일 ~ 23일 17:00 도착분까지(접수 후 확인필수) 참가신청서 1부, 우편 및 방문, 전화, 팩스 접수 불가함. 이메일 korraeans@naver.com(메일제목 통일 – 제 4회 동두천전국농악경연대회 참가신청서 _ 경연부문_구분_신청자명(단체명)으로 기재 후 참가신청서와 영상 첨부 후 접수신청. 문의 : 010-5898-1275 / 010-6666-1380 제출영상 촬영방법 mp4 형식으로 촬영, 해상도 (1920×1080) 이상으로 촬영 복색착용하고 촬영. 카메라는 정면에 고정 후 여백이 많지 않도록 촬영 개인일 경우 반주자는 촬영하지 않아도 무관. 단체 참가자는 전원이 나오도록 촬영. 영상 시작시 경연부문(단체 또는 개인부) + 촬영일시 A4 용지에 작성 후 필히 명시할 것.(단 이름, 팀명 제시불가) 이를 어길시 실격처리 참 가 금 없음. 유의사항 ∎인터넷 지원신청서 접수 유의사항 숙지 않음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참가자에게 본인의 책임으로 간주함. ∎지원신청 접수기간 및 시간이 만료된 경우는 지원신청서 수정 및 접수취소 불가. ∎미기재 또는 기재착오로 인한 책임은 참가자본인에게 있음과 기재 사항과 제출서류가 사실과 다를시 수상취소 될 수 있음. ∎경연당일 본인확인할 신분증 지참(여권, 학생증, 신분증 등) ∎입실 및 경연시간 준수 ∎경연에 필요한 의상, 음악, 반주자는 참가자 본인이 준비(MR사용불가) ∎경연은 공개진행함. 경연진행 ∎심사위원은 7명으로 구성 ∎경연은 단심 1회 경연 진행 부문별 접수 순서대로 경연대회 진행 ∎초.중등부-고등부-동호인(비전문단체)-일반부(전문단체) 순으로 진행됨 경연부문 부문 구분 종목 시간 초, 중등부 개인 앉은반 연주 4분 이내 선반 연주 5분 이내 고등부 앉은반 연주 4분 이내 선반 연주 5분 이내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단체 앉은반 연주 10분 이내 선반 연주 10분 이내 일반부 (성인 전문단체) 앉은반 연주 10분 이내 선반 연주 10분 이내 심사제도 종목 배점(100점)만점 초, 중등부 개인 앉은반 연주 기능 30 연주태도 5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고등부 앉은반 연주 선반 연주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단체 앉은반 연주 기능 20, 단결도 50 감정 20, 무대매너 10 선반 연주 일반부 (성인 전문단체) 앉은반 연주 기능 30, 단결도 30 감정 2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총점은 100점 으로 하되 부문별 점수는 최저 85, 최고 99로 함 ∎경연시간은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심사위원의 합의로 조정가능 ∎경연도중 악기의 이상, 실수 등의 경연진행시 실격 처리함. ∎심사위원 7명의 점수를 합산 후 고득점 순의 순위결정하며 동점 시연장자 순으로 정함(단체일시 참가자 인원수, 전체나이 평균의 연장자순으로 정함) ∎위 기준을 적용할 수 없을시 해당부문의 심사위원원 합의 결정 ∎심사위원별 점수를 합한 결과 최고점수로 결정. ∎심사위원은 구성된 심사항목별 배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하 고 경연자별 심사평을 채점표에 기록 후 부문별 채점완료. ∎경연 후 점수의 재조정은 명확한 실수 외에는 불가능 ∎‘직접스승 및 8촌이내 심사위원회피’ 로 심사를 회피한 심사위원 의점수는 나머지 심사위원의 평균점수를 배점함. ∎본 대회는 최총 심사점수 및 결과를 대회종료 후 신속히 게시판 에 게시한다. 심사회피 제 도 참가자는 직접스승이나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에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회피를 경연 전에 신청해야 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아 수상을 한 후, 회피신청사유가 있었음이 발견 될 시에는, 본 주최.주관처는 수상취소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상장, 상패, 상금을 반환하여야 한다. 참가자는 이 조항을 수락하고 참가하는 것에 동의한다. 시상내역 학 / 생 / 부 – 개 인 부문 상격 상훈 시상내역(원) 인원 학 생 부 개 인 종합대상 동두천시장상 상장 및 상금(300,000원) 1 학 생 부 사물부문 (초등부)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200,000원) 1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품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1 학 생 부 사물부문 (중, 고등부)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200,000원) 1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품 1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1 일 / 반 / 부 - 단체 부문 상격 상훈 시상내역(원) 인원 일 반 부 종합대상 동두천시장상 상장 및 상금 (1,000,000) 1(팀) 일 반 부(성 인 전문단체)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 (700,000) 1(팀)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금 (500,000) 1(팀)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금 (300,000) 1(팀)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최우수상 동두천 시의장상 상장 및 상금 (700,000) 1(팀) 우 수 상 동두천 문화원장상 상장 및 상금 (500,000) 1(팀) 장 려 상 동두천 예총회장상 상장 및 상금 (300,000) 1(팀) 특 별 상 동두천 국악협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인 기 상 이담농악보존회장상 상장 및 상품 1(팀) * 첨부 - 제 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운영 및 심사 규정 제4회 동두천 전국농악경연대회 운영 및 심사 규정 제1조 (명칭) 본 규정은 제4회 전국국악경연대회(이하 ‘본 대회’라 한다)의 운영(심사) 규정이라 칭한다. 제2조 (목적) 본 대회는 우리 지역의 인지도 상승은 물론 국악의 저변확대와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며, 대외적으로 신뢰성을 제고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하고 엄격한 대회가 될 수 있도록 운영 (심사)규정을 제정, 시행 한다. 제3조 (주최 및 주관) 본 대회는 동두천시에서 주최하며 동두천시 무형문화재 제 3호 이담농악보존회, 동두천시립이담농악단에서 주관한다. 제4조 (운영위원회설치) 본 대회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하여 운영위원회를 설치하며, 운영위원 중에서 운영위원장을 선임한다. 운영위원장은 심사위원들에게 운영(심사)규정을 충분히 설명, 숙지시켜야 하며, 발표된 규정과 다른 운영 (심사)규정을 적용할 시에는 경연 전에 참가자들에게 고지하도록 하며 게시판에 별도 게시하여야한다. 제5조 (경연부문) 본 대회의 경연은 본선(단심)으로 진행되며, 각 부문은 초·중등부, 고등부, 동호인부(성인 비전문단체), 일반부(성인 전문단체)의 개인/단체 부문으로 나뉜다. 제6조 (참가자격 및 대상) 1) 부문별 나이에 해당하는 남·여로써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 2) 비전문인(동호인)/전문인 3) 동호인부문(성인 비전문단체)에 관련 전공대학교, 전문단체 소속 구성원은 지원 불가 4) 참가인원은 학생부(초·중·고등부)는 1인(개인), 동호인부 및 일반부는 4인 이상(단체)으로 구성한다. 제7조 (참가신청) 대회 참가비는 무료이며, 참가신청 기간 내에 참가신청서를 작성하여 전자메일로 신청한다. 필수로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에 동의를 해야만 한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참가신청 후 경연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출한다. 제8조 (심사위원의 자격 및 위촉 등) 본 대회의 심사위원은 아래 자격요건을 최소 2개 이상 갖춘 자 중에서 각 분야별 운영위원 등이 3배수로 추천하고 주최·주관측에서 선임한다. 위촉된 심사위원은 대회 당일 공개 한다. 1) 해당분야 석·박사 학위 소지자 2) 해당분야 종사 경력 5년 이상인 자 3) 인접분야 종사 경력 8년 이상인 자 4) 해당분야 공교육 경력 3년 이상 또는 이에 상응하는 경력 3년 이상인 자 5) 기타 해당분야 명망 있는 전문가 제9조 (심사위원 구성) 심사위원은 아래와 같이 구성한다. 1) 심사위원은 전체 7명으로 하고, 경연 전체 심사를 진행한다. 2) 심사위원은 부문, 성별, 연령, 활동지역 등을 고려하여 구성하며, 특정 성향의 심사위원이 편중되지 않도록 한다. 3)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 중에서 호선하며 전체 심사위원장 1인을 선임한다. 전체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경연자에 대한 총평을 실시하여야 한다. 제10조 (심사항목 및 심사기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여 본 대회는 영상심사로 진행 한다. 본 대회의 부문별 심사 항목은 아래와 같다. 종목 배점(100점 만점) 개인 초·중등부 앉은반 연주 기능 30, 연주태도 5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기능 30, 연주태도 50, 무대매너 20, 고등부 앉은반 연주 기능 30, 연주태도 5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기능 30, 연주태도 50, 무대매너 20, 단체 동호인부 (성인 비전문단체) 앉은반 연주 기능 20, 단결도 50, 감정 20, 무대매너 10 선반 연주 기능 20, 단결도 50, 감정 20, 무대매너 10 일반부 (성인 전문단체) 앉은반 연주 기능 30, 단결도 30, 감정 20, 무대매너 20 선반 연주 기능 30, 단결도 30, 감정 20, 무대매너 20 본 대회의 심사기준은 아래와 같다 1) 총점은 100점 만점으로 하되 부문별 점수는 최저 85점, 최고 99점으로 한다. 2) 경연시간은 참가요강에 준하되, 대회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하여 심사위원들의 합의로 경연시간을 조정 할 수 있다. 3) 경연 도중 악기의 이상, 실수 등으로 경연을 정상적으로 완료하지 못 할 시에는 실격처리 한다. 제11조 (수상자 결정) 1) 심사위원 7명의 점수를 합산하여 고득점 순으로 순위를 정하며, 채점결과 동점일 경우 연장자 순으로 정한다. (다만, 단체일 경우 ⓵참가자 인원수, ⓶전체나이 평균 연장자 순으로 정한다) 2) 위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기타의 경우, 해당부문 심사위원의 합의로 결정한다. 제12조 (심사방법) 1) 심사위원별 점수를 합한 결과 최고점수로 결정한다. 2) 심사위원은 구성된 심사항목별 배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경연자별 심사평을 채점표에 간략하게 기록하여야 하며, 부문별 경연시간 내에 채점을 완료하여야 한다. 3) 경연이 끝난 후 점수의 재조정은 명확한 실수 외에는 불가능하다. 4) 직접스승 및 8촌이내 심사위원 회피로 심사를 회피한 심사위원의 점수는 나머지 심사위원들의 평균점수를 배점한다. 제13조 (심사결과) 본 대회는 최종 심사 점수 및 결과를 대회 종료 후 신속하게 게시판에 게시한다. *코로나19상황을 고려하여 수상자들은 추후 우편으로 상장 및 상금을 전달한다. 제14조 (경연순서) 본 대회의 경연순서는 [초.중등부-고등부-동호인(비전문단체)-일반부(전문단체)순]으로 부문별 순서는 접수순으로 진행된다. 제15조 (직접스승 및 8촌 이내 친인척 심사회피 제도) 본 대회는 대회의 공정성을 위해 직접스승 및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를 할 수 없도록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참가신청서에 ‘직접스승 및 8촌 이내 친인척’ 기입란을 삽입하며, 또 ‘참가자는 직접스승이나 8촌 이내 친인척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때에는 해당 심사위원의 심사회피를 신청해야한다. 만약 심사회피를 신청하지 않아 수상을 한 후, 회피신청 사유가 있었음이 발견이 될 시에는 본 주최/주관 단체는 수상 취소를 결정 할 수 있고, 수상자는 해당 상장·상금을 반환해야 한다. 참가자는 이 조항을 수락하고 참가하는 것에 동의하여야 한다’ 라는 문구를 삽입하여야 한다. 제16조 (직접스승의 판단) 본 대회의 경연 참가자등이 직접 스승 범위에 대하여 문의를 한 경우에는 스승에게 학습한 내용을 청취한 후 참가신청서에 기록으로 남기고, 운영위원장이 운영위원들의 의견을 수렴 한 후 공정하게 판단하여 결정한다. 제17조 (수상자 결정 유보) 심사위원회는 가 부문별로 경연자에 대한 점수를 채점/발표한 결과, 훈격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 할 경우에는 운영위원회와 협의하여 훈격 별로 시상을 유보할 수 있다. 제18조 (운영) 본 대회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최선의 목표로 하며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대회를 운영한다. 1) 주최 측은 심사에 관여하거나 일체의 영향을 주어서는 안되며, 심사위원이 철저하게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있도록 공간적·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2) 운영요원을 적절하게 배치하며, 명찰을 패용하도록 한다. 3) 본 대회의 운영은 참가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규정은 참가자에게 불리하게 해석·운영·변경되지 않도록 한다. 제19조 (기타사항) 본 대회의 진행상 또는 심사과정 등에서 문제가 발생될 시에는 운영위원장을 중심으로 심사위원장과 위원들의 논의과정을 거쳐 원만하고 적절하게 해결하여야 하며, 이 규정에 기술하지 않은 사항은, 먼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침을 적용하고, 다음으로 관례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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